우리 몸이 세계라면 리뷰

우리 몸이 세계라면

지난 20년 동안 의학과 보건학을 통해 공부해온 몸과 질병에 관한 주제들을 ‘지식’에 방점을 찍고 새로 집필한 책. 글이 읽기 쉽다. 책을 보다 밑줄 친 부분만 기록으로 남긴다.

 

1. 권력_어떤 지식이 생산 되는가

    • 이름을 알 수 없는 지식에 대하여 : 여성의 몸이 사라진 과학
      • p.26 무엇보다 이렇게 엄마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아토피 질환을 유발하는 환경을 만든 다양한 사회적 환경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효과를 낳습니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이 은폐되고 그 비용을 가장 많은 짐을 감당하고 있는 엄마에게 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위생적인 모유 수유를 하지 못했던 엄마를 비난하는 현상을 기록한 볼리비아 지역의 연구나,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전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미국사회에 관한 연구에서도요. 모성을 빌미로 엄마에게 불가능한 싸움을 시키고,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담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 죽음을 파는 회사의 마케팅 전략 : 담배회사의 지식생산 1
      • p.37 젊은이들은 줄어드는 흡연자를 보충할 수 있는 유일한 고객층이다. 흡연자 중에서 31%만이 18세 이후에 흡연을 시작했고, 24세 이후에 시작하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
      • 담배 회사의 마케팅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은 어린이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입니다. 24세 이전에 흡연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평생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 p.39 담배 회삭들은 아동 노동 착취를 막기 위한 프로그램을 후원하며 유니세프와 관계를 맺고 조직에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논문의 저자들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담배회사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함께 일하게 된 유니세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흡연 예방 활동을 축소시켰다고 이야기합니다.
    • 자본은 지식을 어떻게 섭외하는가 : 담배회사의 지식생산 2
      • 꽃은 누구에게나 아름답습니다.
      • 호박꽃보다야 장미가 아름답고요.
      • 감꽃보다야 백목련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 우아하게 어우러진 꽃밭 앞에서
      • 누군들 살의를 떠올리겠습니까
      • 그러므로 우리들의 적이 숨어 있다면
      • 그곳은 아름다운 꽃밭 속일 겁니다
      • 고정희, <현대사 연구 1> 중
    • 왜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
      • p.62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질병의 치료제가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개발이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인 제약회사가 약을 개발했을 때 거둬들일 수 있는 이윤은, 어떤 약을 개발할지와 그 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지식을 생산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지식은 명백히 선별적으로 생산되고 선별적으로 유통됩니다.

 

2. 시선_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

    • 누가 전시하고, 누가 전시되는가 : 조선인의 몸에 제국주의를 묻다 1
      • p.87 일제 강점기의 인종주의 과학은 실증적, 정량적측정이라는 측면에서 과학의 외피를 둘렀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통치해야 하는 ‘이웃집 원주민’ 조선인에 비해 일본인이 인종적으로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식민 지배의 합리화라는 정답을 정해놓고 그에 부합하는 근거를 수집하는 작업이었던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이 연구들을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인은 더 건강해졌는가: 조선인의 몸에 제국주의를 묻다 2
      • p.93 지석영은 시대의 한계 속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자 애쓰던 조선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렵게 종두법을 배워왔고, 그렇게 배운 종두법을 알리고자 책을 써내고, 종두 의무접종을 국가정책으로 입안시켰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뜻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 빠진 대한민국이
      •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 -김수영, <거대한 뿌리>
      • p.105 제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승리한 강자의 시간만 역사일 수 없다고, 지배받고 비참하게 통과한 시간도 함께 역사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더러운 진창”인 역사에 뿌리내린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역사 속에 거대한 뿌리를 박고 그 위에 서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 역사를 미화하지도 폄하하지도 않으며 그 뿌리를 직시할 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과 함께 우리 길을 열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이 땅에 필요한 지식을 묻다: 조선, 당대의 한계에서 최선의 과학을 한다는 것
      • p.127 <칠정산>과 <향약집성방>과 <훈민정음>은 모두 자랑스러운 조선 과학의 성과입니다. <칠정산>은 중국의 천문역법을 이해하고 그 역법에 이 땅의 위치를 감안해 조선의 천문과 달력을 만든 성과이로, <향약집성방>은 중국의 의학서적을 모아 정리하고 그 서적의 처방에 해당하는 당약과 일치하는 향약을 정리해낸 성과입니다. 둘 모두 중ㅈ국의 과학을 조선의 땅과 사람에 맞추어 주체적으로 수용한 훌륭한 과학 서적입니다. 그리고 <훈민정음>은 그러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자’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새로운 언어를 창조 해낸 역작입니다.

 

3. 기록 – 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불평등이 기록된 몸: 건강불평등은 어떻게 사회에 반영되나
      • p.137 가난은 대뇌 회백질과 해마를 모두 축소시킵니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뇌는 가난으로 인해 자신의 잠재적인 역량 자체를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의 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p.145 스웨덴과 영국과 미국 모두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건강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미국보다 영국이, 영국보다 스웨덴이 그 건강불평등의 규모가 훨씬 더 작은 나라라는 점을 주목했으면 합니다. 어느 사회에 사느냐에 따라 같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더라도 건강 상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 p.149 모든 사회에서 소득이 낮을 수록 지위불안 점수는 높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사회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부터 가장 부자인 사람까지 모든 집단에서 지위불안 점수가 2점이 넘었습니다. 소득불평등이 적은 사회에서는 가장 가난한 계층을 제외한 모든 집단에서 지위불안 점수가 2점 이하로 나타났습니다. 소득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일수록,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p.154 소득이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타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짧아지고 아프고 병드는 일이 더 자주 반복된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건강은 사랑하고 일하고 도전하기 위한 삶의 기본 조건입니다. 건강이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차별이 투영된 몸: 과학적으로 불투명한 인종이라는 개념
      • p.161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한 제6차 세계가치조사에서 ‘나는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라고 답한 비율을 살펴보면 스웨덴 3.5%, 미국 13.6%에 비해 한국은 44.2%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다른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나라이지요. 인종과 국적은 다른 말이지만, 한국인을 하나의 단일 민족 혹은 단일한 인종으로 여기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다른 인종의 사람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는 밀접히 닿아 있습니다.
      • p.175 한국사회에서 다른 ‘인종’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은 직장과 거주 지역과 공공기관과 같은 일상생활 공간에서 차별을 경험하거나 차별을 당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사자가 곳곳에서 출몰하거나 사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두려움을 가지고 매일매일을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수의 한국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라는 ‘맹수’가 수많은 사람들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있는 것입니다.
      • p.176 인종이 사람 종의 자연적인 구분 단위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인종이란 무엇일까? 인종은 고정관념이다. 실제로 직접 알아보지 않고, 누군가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많은 방법 중 하나다.

 

4. 끝 – 죽음의 한가운데 있는 삶

    • 가장 많은 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암으로 읽는 질병의 원인과 죽음의 원인
      • p.191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김관욱 선생이 흡연자를 비난하는 사회에 비판적인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된 삶 속에서 다른 사회적 대안이 없는 이들에게 흡연이 때론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하니까요.
      • p.202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의 종류를 불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암으로 더 많은 죽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암 사망의 불평등이 명확한 한국사회에서 그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은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암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개인의 불운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에게는 ‘왜 가난한 사람이 더 운이 나븐지’ 되물어야 합니다.
    •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과학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흑사병, 죽음이 일상이 된 중세의 풍경
      • p.213 흑사병 유행 당시 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하나 더 살펴보지요. 흑사병 환자가 발생하면서, 이들을 보살피는 간병인도 필요했을 겁니다. 흑사병에 걸린 환자를 돌보는 일은 모두에게 두려운 일이었겠지요. 그렇다면 환자를 돌보는 일은 누가 했을까요? 이 일이 아니면 생계가 막막했던 “늙은 노파나 허드렛일을 하던 하층계급의 여성들”이 간병을 도맡았습니다. 당연히 이들의 흑사병에 걸릴 위험은 높을 수 밖에 없었지요.
    •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 p.230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죽음앞의 인간>에서 18세기 이전 유럽에서 받아들여지던 죽음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 중 하나로 일상성을 이야기합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죽음을 준비했고, 그런 죽음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일은 조롱거리처럼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죽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떠난야 하는 것을 슬퍼했지만, 그러한 감정의 바탕에는 임박한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가까운 이들을 불러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작별인사를 하는 일이 의식처럼 행해졌습니다. 그렇게 죽음은 삶의 일부로 존재하는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 p.233 언제부터 죽음의 주도권을 당사자가 아닌 의학이 가지게 된 것일까요? 필립 아리에스는 19세기 후반부터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산업화를 거치고 공중위생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죽음에 땀과 고름과 배설물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입니다. 임종의 시간은 더 이상 일상적으로 존재하며 삶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치러내는 의식이 아니라, 숨기고 피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은 그런 ‘추한’ 죽음을 사회적으로 은폐하기에 가장 적절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상적인 죽음은 자신의 품격을 지키며 불가피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생명연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의료적 처치의 중단으로 인한 기술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죽음의 죽음’ 이라고 표현합니다.

 

5. 시작 – 질문되어야 하는 것들

    • ‘쓸모없는’ 질문에서 시작된 과학: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 p.241 많은 사람들이 ‘과학은 진리를 찾아내고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려준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의 목소리를 신뢰하는 것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합리적 사고 과정 때문이지, 그 결론이 진리를 담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 질문하지 않은 과학이 남긴 것: 비윤리적 지식 생산 과정을 말하다

 

6. 상식 – 지식인들의 전쟁터

    • 자신의 경험을 믿지 않는 일: 데이터 근거 중심 의학에 관하여
      • p.293 그런데 그 질문은 몇몇 개인의 경험으로는 답할 수 없습니다. 충분한 수의 환잗즐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결과에 대한 여러 비판에 대응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우리는 어떤 치료법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한 여러 사례들은 치료자의 직관과 경험이 치료 효과를 말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상식’과 싸우는 과학: 당위에 질문하는 과학의 역사
      • p.316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이나 우리가 몸으로 경험해 얻은 직관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과학의 출발점이지요. 과거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을 포함한 하늘이 돌고 있다는 천동설은 당대의 상식인 동시에 사람들의 경험에 부합하는 설명이었습니다. 하루종일 한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걸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천동설은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계속 돌고 있다는 지동설은 천동설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지구에서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에게 직관적이지도 않지요. 하지만 천동설보다는 지동설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정확한 설명입니다.
    •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드는 일]
      • p.327 대학이 지금과 같은 지식생태계를 가지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 시스템으로 인해 어떤 연구자와 어떤 연구가 배제당하고 있는지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한국사회의 고유한 문제를 한국어로 고민하고 쓰는 연구자들이 오늘날 대학에서는 가장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특히 한국사회의 사회적 약장제 관해 연구하는 경우 더욱 도드라집니다. 전 세계 지식 시장에서 한국이 ‘변방’이기에 생겨나는 지식 생산과 유통의 문제점이 한국사회 내부에서도 발생합니다. 한국에서 권력과 자본에 소외딘 이들의 삶을 연구할 때에도 비슷한 문제점이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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