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기억.
체력검정 때 오래 달리기가 시작되고 나는 선두로 치고 나간다.
질주는 오래 가지 못했다.
한 바퀴만에 다 따라 잡혔다.
그리고 결과는 꼴등.
그 기억 이후 내 인생에 오래 달리기란
잘하지 못하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군대 훈련소 기억.
“정신 차려. 6202번”
불과 1.5km 구보로 정신이 나가버린 나를
조교가 꾸짖는다.
하지만 달리는 거리는 점점 늘어만 갔고
훈련소 5주차때 전우들과 운동장을 달리면서
희열을 느꼈다.
‘내가 혹시 말(horse)인가?’
생각될 정도로 몸이 가볍고 숨이 지치지가 않았다.
3~40일만에 어느 정도 육체 개조가 되는 것이었다.
국방부의 시간은 흘러가고
전역을 한 나는 떡볶이와 맥주로 살크업을 한다
헬스, 등산, 자전거는 즐겨했지만
내 인생에 달리기는 그 뒤로 없었다.
1년 전 가을
정신적 위기가 찾아왔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코로나가 대유행하여 실내운동은 엄두도 못내고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은 언덕이 많은 동네라
자전거 타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동네 초등학교를 뛰기 시작했다.
지금껏 잘 뛰었다.
기록도 제법 잘 단축하여
뛰는 재미가 붙을 무렵.
여름이 찾아왔고
더위를 먹은듯
한달 가량 잘 뛰지를 못했다.
결정타는 코로나.
코로나가 오더니
그간 뛰었던 기록을 다 앗아갔다.
리셋이 되버린 것이다 ㅜㅜ
그 전까지 가장 잘 달렸던 기록은
10km : 60분
5km : 27분
이었다.
코로나 이후
5km를 36분에 뛰게 된다…
10km는 엄두도 못낸다.
동기부여도 안되고,
그래서 무작정 마라톤 대회를 신청했다.
하프 훈련 방법
주위에 같이 뛰는 사람도 없고 코치도 없다.
인터넷에서 훈련 스케쥴을 보고 거의 그대로 따라했다.
http://www.marathon.pe.kr/training/half_200.html
원칙은 단 하나였다.
훈련을 (되도록이면) 빼먹지 말고 느리더라도 정해진 거리를 달릴 것.
하지만 초보 러너에게는 쉽지 않았다. 태풍이 부는 맞바람을 뚫고 11km 달리고
발목에 찌릿찌릿 통증이 올때도 달렸다.
시간상 12주 스케쥴을 다 하지 못했고 7주차 까지만 실행했다.
6주차때는 피로가 누적이 되었는지 러닝이 끝나면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8주차는 대회주여서 러닝을 5km 정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거리라던가 호흡이 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리에 힘이 금방 빠졌다.
체중이 문제였다.
먹어댔고. 훈련 시작시기와 비교했을때 2kg 정도 더 쪘다.
대회 당일의 전략
잘 달릴때도 15km 이상을 뛰어본적 없었다.
그래서 15km가 심리적 한계였다.
무족권 6분 50초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당일 먹은 것
울트라 마라토너 심재덕 형님의 책을 보고 뛰기 2시간 전 꿀을 묻힌 약간의 떡을 먹었다.
책을 보면 심재덕 형님은 당일날 많이 먹지 않는다. 떡 몇개 포도쥬스 정도.
나도 따라 해 본다.
떡 몇개와 작은 바나나 그리고 포카리 스웨트까지 우걱우걱 위 안에 집어 넣는다.
하지만 평소의 아침엔 요거트와 커피 정도 밖에 먹지 않는 나.
속이 부대껴 헛구역질이 자꾸 올라왔다.
8시까지 대회장에 오라는 공지가 있어 집에서 6시쯤 넘어서 출발했다.
원래는 혼자 차를 가지고 가려 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경주 놀러가는 겸 태워 주셨다.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차 안에서 왠지 축 늘어졌다.
중간 휴게소에 들러 속을 비워내야했다.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배변을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마라토너 형님들이었다.
휴게소에선 잠이 덜깬 러너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멀리 거제에서 올라온 관광버스도 보였다.
대회에 참여한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대회장은 경주시민운동장.
경주 IC를 통과하고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초조해졌다.
경주 시민운동장 근처에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몸을 풀었다.
하프 주자에게는 파워젤을 줬다. (엄밀히 말하면 사먹은 거겠지)
뛰기 30분전에 먹어야 한다고 해서 바로 털어 넣었다.
이게 초반 러닝에 꽤 도움이 되었던 듯 하다.
어떻게 입어야 하지?
복장고민이 좀 있었다.
대부분의 주자들은 싱글렛을 입고 있다. (나시 같은거..)
나는 나이키 긴팔을 입었다.
러닝용도가 아니고 트레이닝 용도 같다.
일회용 우비를 걸친 사람들이 보인다.
일회용 우비를 걸치고 몸을 데우다가 출발즈음 버리고 뛰면 되는 것 같다.
대회장 스케치
대회장은 인산인해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같이 뛰는건가.
동호인들은 모여서 같이 몸을 풀었다.
마치 소풍온 것 처럼 서로 수다를 떨며.
요새 인스타를 보면 런크루들이 많은데 MZ세대들끼리 모인 동호회의 모습도 보였다.
패셔너블했다.
사회자는 배동성이었다.
알고보니 마라톤 대회를 하면 단골로 사회를 보는 듯 했다.
오래된 짬바(?)로 경기 사회를 능수능란하게 잘 했다.
9시가 되고 마스터즈 -> 풀코스 -> 하프코스 -> 10km -> 5km 순으로 출발했다.
나는 하프코스의 후미에서 출발했다.
출발선을 지나가니 엄마가 나를 지켜보고 불렀다.
힘이 났다.
페이스 메이커가 풍선을 달고 뛰었는데 내 페이스인 6:50/km 는 없었다.
있었으면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 뛰었을 건데.
내 페이스는 느려도 너무 느린 것이었다.
출발하고 나서 페이스
나의 오래된 친구 가민 워치가 있다.
6:50/km 로 맞춰놓고 계속 뛰기만 하면 된다.
아침부터 몸을 풀어서인걸까.
보통 러닝을 할때는 처음에 몸이 안풀려 힘이 들었는데 대회에서는 달랐다.
처음부터 힘이 났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고, 사물놀이가 풍악을 울리고, 행인들이 응원해주니 힘이 난다.
마라톤 대회 후기 글을 읽어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 초반에 흥분해서 오버 페이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힘을 아껴 뛰다가 마지막에 스퍼트를 하라고.
그리고 나의 목표는 완주였다.
걷지 않는 것이었다. 대회의 탈락기준은 하프 2시간 30분 안에만 들어오는 것이 목표였고, 15km 이상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게 가능할지 안할지 자신이 좀 없는 상태 이기도 했다.
꾸준히 6:50/km 로 뛰니 이어서 출발하 10km 주자들에게 계속 따라잡혔다.
하지만 전혀 초조해 하지 않았다.
경주의 시내를 달렸다.
경주역을 달리고
첨성대를 달렸다.
딱 뛰기 좋은 온도였다.
기분 좋게 뛰어나갔다.
5km가 되어 급수를 했다.
생수를 한잔 먹고 뒤이어 포카리 스웨트를 먹었다.
당이 떨어질걸 대비해서 말랑카우를 몇개 주머니에 넣고 달렸다.
다음번엔 에너지 젤을 소지해서 그걸 먹어야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간 두달간 꾸준히 뛰어온 것의 성과 인것 같기도 싶고 앞의 주자들을 따라잡을땐 희열이 들기도 했다.
10km 를 지나니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다.
오버페이스를 했거나 하프 마라톤을 준비 없이 참가한 분들이리라.
옆에서 달리다 숨소리만 들어보면 알았다.
벌써 지쳤구나하고.
물론 내게도 변곡점이 찾아왔다.
15km 지점에 가니 초코파이가 있다.
초코파이를 먹은 뒤 부터 페이스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페이스에 맞추려고 하니 힘이 들었다.
발에 불이 난듯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숨은 괜찮았다.
페이스를 좀 더 빠르게 해서 달렸으면 어땟을까 지금 생각해보지만 만약 페이스를 빠르게 해서 달렸으면 완주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든다.
날이 뜨거웠기 때문에 달리기가 더 힘들었다.
이제 내가 따라잡히는 것보다 따라잡는 주자들이 더 많았다.
주자들의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걷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걷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16~17km 가 되니 뜨거워진 날씨와 초코파이 탓에 목이 말라왔다.
달리고 난 뒤에 다음번엔 꼭 에너지젤을 챙겨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km 지점에 가면 물이 있겠지 하고 달려갔으나..
물이 없었다.
거의 골인 지점이라 그런지 급수를 안해주는 것이었다.
한번 배신을 당한 기분으로 힘이 쭉 빠졌으나 이제부턴 좀 막판 스퍼트를 해야했다.
저기 멀리의 아주머니로 보이는 주자를 경쟁자로 정하고 마지막 스퍼트를 시작했다.
몸이 뻗뻗해서 이게 내가 뛰는건지 통나무가 뚝딱 거리는지 알수는 없었으나 어쨋든 골인.
아주머니를 간발의 차로 따라잡지는 못했다.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 넘어질뻔 했다.
오래 달려서 몸이 뻗뻗해졌는데 내달리는 힘을 주체 할 정도로 근육이 피로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부상 그리고 회복
도착을 하고 메달 배부처에 가서 메달을 받았다.
기록에 대한 확인 없이 참가했으면 그냥 다 나눠주는 것 같다.
하지만 완주를 했기 때문에 남이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메달이 가치가 있어보였다.
엄마 아빠와 사진을 찍고 그렇게 대회가 끝났다.
자동차로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경주의 태양은 가득했고 러너들의 힘을 빼앗어 갔다.
여전히 도로에는 풀코스를 뛰는 러너들이 느릿느릿 뛰며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도 풀코스를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대회 참여하고 도저히 몸이 회복이 안되었다.
양쪽 엄지 발가락에는 멍이 들어 있고 몸 전체가 다운이 되어 있다.
그리고 아주 강렬하게 먹을 걸 원해서 며칠 뒤에도 우걱우걱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친구들의 2배 넘게 음식을 먹어댔다.
뛰는 것 보다 중요한 건 회복이라는 말이 있던데.
내게 맞는 회복 방법을 모르겠다.
몸을 혹사 시킨 뒤 가볍게라도 움직여주는게 좋은가?
그냥 스트레칭 정도만 하는게 좋은가?
무엇을 먹어야 회복이 빠른가.
어떤 운동을 해야 회복이 빠른가 등등 고민을 하고 있다.
1년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50m의 거리를 헉헉거리며 뛰던 내가 어느새 러너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프 마라톤 처음 뛰어보고 느낀 점
스포츠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특히 올림픽을 보면 나도 전국체전에 출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30대 후반인 내 몸으론 생활체육대회 정도가 적당 할 것이다.
하지만 대회를 참여해보고 느낀 점은 마라톤, 그리고 러닝이라는게 남과의 경쟁이 아닌 운동이라는 점.
그리고 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뒤엔 매일매일 순간순간의 훈련에 긴장감이 감돌아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
이렇게 마음속에서 부터 우러나 러닝에 헌신하는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진다점이 날 고양 시킨다.
신발끈을 묶고 러닝 워치를 키고 뛰기 시작할때 나는 어느새 실전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이 된다.
기록이 잘 나오면 뿌듯해하고 기록이 안나오는 날이면 침울해하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그런 러너가 되었다.
올시즌 마라톤 대회는 이걸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내년 봄에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야겠다.
그전에 살을 좀 빼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