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vs80의 사회 리뷰 – 미국 중산층이 쓴 불평등에 관해

20vs80의 사회

20vs80의 사회

봉준호의 <기생충>을 보고 전율한 장면이 있다.  송강호가 이선균을 칼로 찔러 죽인 시퀀스다. 카타르시스가 몰려왔다. 빈자가 부자를 손으로 죽인다. 통쾌했다. (옳은 감정인지 그른 감정인지 차치하고) 나에게는 부자에 대한 적개심이 있다. 회사에 다닐 때도 재벌 일가를 보면 그런 감정이 일어났다. 특히 아들놈을 보면. 왜 적개심이 든 것일까? 남 앞에서 떵떵거리는 모습을 보기 싫은 것이다. 내 열등감일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나는… 이라는 생각이 든 것일까.

물론 불평등의 문제는 어느 시대에도 존재했다. 8~90년대의 호황기를 거쳐 전지구적으로 성장이 멈춰버렸다. <기생충>이 오스카를 손에 쥐게 된 것은 이 시대에 가장 시의적절한 주제 불평등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전지구적 화두다.

미국 중산층이 쓴 불평등의 책

<20vs80의 사회>는 미국 중산층이 쓴 불평등에 대한 책이다. 20의 유리하고 특권적인 지위를 내려 놓자는게 책의 핵심 주제다.

p.18 상위20퍼센트인 중상류층은 상당히 많은 혜택을 받아 왔다. 이제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유리하고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인정해야 할 때다. 여기에는 겸손, 염치, 그리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지만, 문제 자체를 인식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 중상류층 사이에는 ‘나는 이만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중상류층이 1퍼센트를 비난하며 ‘우리가 99퍼센트’라고 외칠때 처럼, 사람들은 대개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과 비교하기 마련이라는 점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의 지위는 나의 능력(학력, 두뇌, 노력)덕분이므로 마땅히 나의 것’이라고 확신 하고 있는 것이다.

<20vs80의 사회>의 문제의식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아메리칸 드림의 탄생지 미국에서도 폐어다.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삼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삼루타를 친줄” 아는 20의 사람들과 헛스윙질만 하고 있는 80의 사람들이 있다. 80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여전히 1루로 못 가고 있다고 자책한다.

불평등은 대물림 된다. 교육으로 직업으로. 유동성이 떨어지는 사회다. 저자는 80이 20으로 가는 상향 이동성보다는 20이 80으로 가는 하향 이동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p.107 사회의 유동성을 가늠해 보기에는 하향 이동성이 상향 이동성보다 좋은 지표일 것이다. … 높은 계층의 아들들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허용하는 사회가 평범한 계층의 똑똑한 아들들이 위로 올라갈 수는 있을지언정 높은 계층의 아들들은 특권을 계속 유지하는 사회보다 더 열린 사회다.

지위에 대한 집착이 경직된 사회를 만든다. 내 자녀가 80으로 떨어지는게 무섭다. 하지만, 80으로 살아도 문제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철학자 존 롤스의 공정한 사회를 인용한다.

p.109 철학자 존 롤스는 공정한 사회는 사람들이 계급 사다리에서 자신이 어느 칸에 있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표현으로는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에서, 그 사회의 사회구조에 동의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한 바 있다.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는 “자신이 사회에서 어느 자리에 있게 될지, 자신의 계급적 지위나 사회적 지위가 무엇이 될지, 또 자신이 자연적으로 갖게 될 능력, 지능, 강점 등이 어느 정도일지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어떻게 부는 되물림 되는가?

양육, 교육, 직업으로 불평등은 되물림 된다.

중상류층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는 좋은 학교에 아이들을 넣는다. 심지어 여기에서 멈추지도 않는다. 우리는 시간, 돈, 전문성을 들여 아이가 다니는 학교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대졸인 부모 대부분이 자녀의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학교 위원회에 참여한다. (양육) 하버드의 동문 자녀 우대제는 옳지 않다. 덜 가진 학생에게서 기회를 빼앗아 더 가진 학생에게 주는 것이다. … 이 제도를 없앤다고 모든 것이 완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지금 보다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교육) 그리고 알게 모르게 상류층에서 구전되는 인턴 일자리 되물림까지. (직업)

어떻게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아래의 조치로 이 상황을 개선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아래가 바로 그것이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을 줄이자
-가정 방문 프로그램을 늘려 육아의 질을 높이자
-더 훌륭한 교사들이 일할 수 있게 하자
-대학 학자금 조달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자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를 없애자
-동문 자녀 우대를 없애자
-인턴 기회를 개방하자
-역진적 조세 보조 폐지로 자금을 마련하자

결국 재분배가 핵심 키워드다

마치며

하지만, 이 문제의 개선은 20에게 달렸다. 20에게 사회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의 성찰과 양보 없이는 이 구조를 바꾸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면 이들이 여론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227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권력은 “여론 권력”이다. 우리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영향력을 미치는 모든 지위는 상당 부분 중상류층이 차지하고 있다. 기자, 학자, 연구, 과학, 광고, 여론 조사, 출판, 미디어(옛 미디어와 새 미디어 모두), 예술 등은 그 속성상 중상류층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기 좋은 영역이다.

책속으로

이 책에 쏟아진 찬사

1. 문제는 상위 20퍼센트다

p.18 상위20퍼센트인 중상류층은 상당히 많은 혜택을 받아 왔다. 이제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유리하고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인정해야 할 때다. 여기에는 겸손, 염치, 그리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지만, 문제 자체를 인식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 중상류층 사이에는 ‘나는 이만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중상류층이 1퍼센트를 비난하며 ‘우리가 99퍼센트’라고 외칠때 처럼, 사람들은 대개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과 비교하기 마련이라는 점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의 지위는 나의 능력(학력, 두뇌, 노력)덕분이므로 마땅히 나의 것’이라고 확신 하고 있는 것이다.

p.19 이 책에서 펴고자 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미국 중상류층은 나머지 대중으로부터 확연하게 분리되고 있다. (2장) 불평등은 어린시절에 시작되며 (3장)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 (4장) 이러한 계급 분리는 노동 시장에서 가치가 인정되는 ‘능력’을 발달시킬 기회가 중상류층에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발생한다. (5장) 하지만 중상류층이 불공정하게 기회를 ‘사재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6장) 불평등을 줄일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며(나는 일곱 가지 조치를 제시했다.) 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은 중상류층이 부담해야한다.(7장) 이런 변화가 가능하려면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중상류층의 각성이 그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하다.(8장)

p.25 중상류층과 나머지 사이에 불평등이 증가하면 중상류층 부모는 아이가 계속 중상류층에 속하게 하려고 더욱 기를 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유리 바닥’을 깔아주는 데 갖은 노력을 들일 것이다. 이렇게 불평등과 계층간 비이동성은 서로를 강화하게 된다.

p.29 “삼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삼루타를 친 줄 안다.”

p.29 기회 사재기 매커니즘 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둘째는 동문 자녀 우대와 같은 불공정한 대학 입학 사정 절차, 셋째는 알음알음 이뤄지는 인턴자리 분배다. 모두 중상류층 자녀에게 유리하도록 경기장을 기울인다. 브링크 린지와 스티븐 텔레스는 이를 “사로잡힌 경제”의 징후라고 보았고 라이핸 살람은 이를 “기득권자 보호”매커니즘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것을 줒ㅇ상류층 아이들에게 하향 이동의 위험을 막아주는 “유리바닥”이라고 부른다.

2. 20 VS 80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p.37 계급 구분을 논하는 것은 몹시 미국적이지 않게 들린다. 미국의 자아상은 경제적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한 도덕적 가치를 갖는 계급 없는 사회다. 이것은 세계가 미국에 대해 가진 이미지이기도 했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인이 “어느 나라나 어느 시기에 비해서도 재산과 지능 면에서 더 평등하다.”라며 “이는 평등하게 더 강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p.43 종합하면 미국은 빈곤이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 나라이면서 극단적인 부자들이 존재하는 나라다. 그런데 여기에 빠진 이야기가 있다. 맨 꼭대기 1퍼센트의 바로 아래에 있는 (그리고 때때로 맨 꼭대기 1퍼센트에 진입하기도 하는) 19퍼센트와 그 아래 80퍼센트 사이 경제적 분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p.53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먼은 부모 잘못 만나는 것을 “가장 큰 시장 실패”라고 불렀다.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 ‘시장 실패’를 성공적으로 피한 셈이다.

p.54 <이코노미스트>는 “노동자 계급 가구는 한 동네에 살아서 직접 아는 친구를 사귀는 경향을 보이지만, 전문직 가구는 더 넓은 범위의 지인을 갖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무언가 해결해야 할 문제나 따내야 할 기회가 있을 경우, 전문직 가구는 대개 한 다리만 건너면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알고 있는 사람(변호사, 정신과 의사, 기업 경영자 등)을 찾을 수 있다.

p.59 정말로 그렇다. 미국의 중상류층인 우리에게 인생은 썩 괜찮다. 우리는 불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쉽게 회복되었고 이제는 풍요로운 경제의 트랙에 다시 올라탔다. 우리가 계급으로서 누리는 이점은 은행 잔고 수준을 훨씬 넘어서 교육 수준, 직장에서의 통제력, 동네의 질, 자신 있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 건강, 식생활, 수명, 가족의 안정성까지 포함된다.

3. 양육 격차가 특권을 만든다

p.69 로크는 이렇게 말했다. “자녀를 잘 교육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와 관심사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며 국가의 부와 번영은 여기에 매우 크게 의존한다.”

p.78 요컨대 중상류층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는 좋은 학교에 아이들을 넣는다. 심지어 여기에서 멈추지도 않는다. 우리는 시간, 돈, 전문성을 들여 아이가 다니는 학교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대졸인 부모 대부분이 자녀의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학교 위원회에 참여한다. 고졸인 부모 중에서는 그러는 사람이 5명 중 1명 꼴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 애슐린 넬슨과 베스 개즐리가 2014년에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부유한 동네의 학교들은 재정 지원을 하는 후원회나 비영리 재단과 연계되어 있을 가능성도 더 크다. 학부모 기부금으로 이뤄지는 “추가적인 자금”은 정부 지출보다 훨씬 더 불균등하다. 맨해튼에는 매년 후원금 모금액이 백만 달러가 넘는 공립학교들도 있다.

p.79 이 모든 요인들을 종합해 보면, 중상류층 아이들은 사립 학교에 가든지 공립학교에 가든지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학과 외의 교육 기회도 풍성하게 누린다. 이러한 이득은 앞에서 묘사한 다른 모든 이득과 함께 시험 점수의 격차를 벌리는 데 일조한다.

p.87 자,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땄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경쟁의 기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석박사 학위가 필요하다. 석박사 학위는 두 가지 목적을 수행한다. 우선 인적 자본을 더 향상시키는 본연의 기능이 있다. 하지만 점점 많아지는 대졸자와의 차이를 드러내는 ‘구별 짓기’의 기능도 한다. 석박사 학위는 지위재다. 즉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가치를 갖는다. 중상류층에 끼려면 이제 학위 하나로는 안 되고 두개가 필요하다.

4. 유리 바닥 위의 사람들

p.92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소득 불평등을 더 많이 용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세대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과 공정하게 경쟁하며 더 뛰어난 사람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늘 승리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승리자들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이기기를 원했다.

p.93 미국인은 토머스 제퍼슨이 말한 “(부와 출신에 기초한 인위적인 귀족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도덕과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귀족” 중에서 지도자가 선택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오늘날 미국은 여러 유럽 국가보다, 심지어 영국보다도 경직된 계급 구조를 가지고 있다.

p.95 전후의 미국은 절대적 이동성의 엔진이었다. 높은 경제 성장을 (적어도 백인 사이에서는) 광범위한 대중이 누릴 수 있었던 덕분에 다수 대중이 절대적 상향 이동을 경험했다.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니어도 제대 군인 원호법이나 학교 인종 분리 철폐 등으로 삶의 기회가 증가하면서 많은 이에게 절대적 상향 이동의 길이 열렸다. 트럭 운전사의 아들도 기업의 창업주가 되어 성공할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체티의 연구에 따르면 1940년 출생자 10명중 9명은 부모의 소득을 능가했다. 지금도 이 황금기의 기억이 많은 미국 지도자의 세계관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장기적으로 보면 전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는 예외적인 시기였으며, 흑인에게는 그리 황금기도 아니었다.

p.107 상향 이동성에 관심이 집중되느라 하향 이동성의 규모와 중요성이 마당히 받아야 할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유동성을 가늠해 보기에는 하향 이동성이 상향 이동성보다 좋은 지표일 것이다. … 높은 계층의 아들들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허용하는 사회가 평범한 계층의 똑똑한 아들들이 위로 올라갈 수는 있을지언정 높은 계층의 아들들은 특권을 계속 유지하는 사회보다 더 열린 사회다.

p.109 철학자 존 롤스는 공정한 사회는 사람들이 계급 사다리에서 자신이 어느 칸에 있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표현으로는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에서, 그 사회의 사회구조에 동의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한 바 있다.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는 “자신이 사회에서 어느 자리에 있게 될지, 자신의 계급적 지위나 사회적 지위가 무엇이 될지, 또 자신이 자연적으로 갖게 될 능력, 지능, 강점 등이 어느 정도일지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p.110 나는 중상류층 부모들이 그녀의 자녀가 (그리고 손주가) 장래에 여전히 중ㅈ상류층 지위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덜 갖게 된다면 재분배 정책을 더 많이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자녀가 하향 이동을 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충분히 존재한다고 느낀다면 하향 이동을 할 때 연착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정책에 더 열린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p.112다음과 같은 악순환 고리가 작동하고 있다.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중상류층에서 떨어질 경우 더 깊게 추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중상류층 부모는 자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리 바닥을 깔아주고자 할 동기가 커지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도 있다.

5. 고소득 일자리는 어떻게 대물림되는가

p.117 미국은 능력 본위적인 시장을 가지고 있지만 불공정한 사회다. 미국의 노동 시장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종류의 능력(기술, 지식, 지능 등)에 보상하는 기능을 매우 잘 수행한다. 불공정한 지점은 경쟁 자체가 아니라 경쟁에 나서기 위한 준비를 하는 단계에서 발견 된다.

p.119 우리의 목표는 시장경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p.123 계급이 인위적인 형태의 상속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인정받는 능력을 통해 재생산될 때, 승리자들은 그 결과로 발생하는 모든 불평등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확신하기 쉽다. 패배자들에게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공명정대하게 승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소득층 사람들은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소득이 높지 않은 사람들은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조건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p.124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정치적 과제는, 어떻게 승리자들에게 많은 경우에 그들의 성공이 그들 자신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운 좋게 태어났기 때문임을 깨닫게 할 것인가이다. 그렇게 된다면, 능력 육성의 기회를 더 평등하게 만들기 위한 개혁에 더 많은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p.129 운, 책임, 기회, 분배 등의 문제를 두고 많은 철학적 논의가 이뤄져 왔지만, 내가 하려는 주장은 단순하다. 첫째, 시장 경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은 경쟁을 준비할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했다는 전제에서만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그런 경우라도 시장 경쟁의 승리자가 그 승리의 결과로 획든한 것을 전부 차지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경쟁을 준비할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현 세대의 승리자가 획득한 것을 재분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p.135 고등 교육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는 아주 많다. 문제는, 현재 시장이 진지한 개혁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균형 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점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명문 대학들은 많은 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개별 학교 수준에서는 그렇다. 여러 대학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대학더러 가난한 학생들을 더 많이 뽑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6. 기회 사재기라는 전략

p.163 긴 말 할 필요 없이, 하버드의 동문 자녀 우대제는 옳지 않다. 덜 가진 학생에게서 기회를 빼앗아 더 가진 학생에게 주는 것이다. … 이 제도를 없앤다고 모든 것이 완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지금 보다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문 자녀 우대제가 없는 하버드는 의심의 여지없이 지금 보다 더 나은 하버드일 것이다.

7. 변화를 위한 제안

p.184 미국은 너무 경쟁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 충분히 경쟁적이지 못한게 문제다. 노골적으로 경쟁을 저해하는 기회 사재기 관행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쟁에 잘 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불평등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시장은 이를 반영하는 거울일 뿐이다.

p.195 어떻게 하면 훌륭한 교사가 가난한 동네의 학교에서 일하게 할 수 있을까? 이상주의에 기대지 말고 인센티브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 한 가지 접근 방법은 돈을 쓰는 것이다. 앨런 크루거는 “부유한 교외 지역이 아니라 도심 저소득층 주거지의 공립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 즉 학교생활에 준비가 덜 되어 있고 더 산만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들에게 훨씬 많은 보수를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교육부 장관 시절 안 던컨은 1년에 150억 달러면 가장 가난한 20퍼센트의 학교에서 교사들의 봉급을 50퍼센트 이상 인상할 수 있다는 추산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을 줄이자 | 가정 방문 프로그램을 늘려 육아의 질을 높이자 | 더 훌륭한 교사들이 일할 수 있게 하자 | 대학 학자금 조달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자 |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를 없애자 | 동문 자녀 우대를 없애자 | 인턴 기회를 개방하자 | 역진적 조세 보조 폐지로 자금을 마련하자

8. 2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고함

p.227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권력은 “여론 권력”이다. 우리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영향력을 미치는 모든 지위는 상당 부분 중상류층이 차지하고 있다. 기자, 학자, 연구, 과학, 광고, 여론 조사, 출판, 미디어(옛 미디어와 새 미디어 모두), 예술 등은 그 속성상 중상류층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기 좋은 영역이다.

p.230 하지만 곧 나는 나를 진정으로 끌어당긴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미국이 내게 언제나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개방성과 평등에 대한 약속이었다. 나는 영국에 팽배한 상류 계급의 우월 의식과 계급 구분을 늘 싫어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나의 새 조국을 더 잘 알게 될 수록 여기에서도 계급이 고착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특히 계급 사다리의 위쪽은 영국보다도 경직성이 심했다. 오늘날 영국과 미국의 주된 차이는 미국인들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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